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모든 국민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슬픔과 고통에 동참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유독가스와 암흑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당시의 참혹하고 처절했던 상황이 잊혀지지 않아 침상에 누워 눈을 감으면 떠오르고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멍하고 넋을 잃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도 없다.
또 사소한 자극에도 깜짝 깜짝 놀래며 신경이 과민해져 쉽게 화를 내거나 흥분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할 수 없게 된다. 필자는 이번 참사로 같이 타고 갔던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자신이 잘 돌보지 못했다는 심한 죄책감 속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전쟁이나 고문, 강간, 나찌의 대학살, 가스폭발사고, 비행기 추락 등의 재난이나 지진, 폭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커다란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피해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러한 재난으로 두려움이나 무력감 등과 같은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경험하고 위의 언급된 여러 가지 정신과적인 증상들이 일어나서 개인의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1994년 미국정신과학회에서 제정한 진단기준(DSM-IV)에서는 이런 증상들이 1개월 이내에 사라지면 ‘급성스트레스 장애’라 하고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부른다. 아마도 이번 지하철 참사를 겪은 생존자들과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 중 상당수에서 앞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리라고 예상된다. 미국 사람들의 8%에서 살아가면서 이 장애가 생길 수 있고 치료받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들과 나찌 수용소의 생존자들 중 이 장애가 걸린 사람들은 50년 이상 아니면 평생 지속된다는 연구가 있다.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 중 한 젊은 청년은 중·고등 시절 너무 어리숙하고 착하다 보니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많이 맞기도 하는 소위 ‘왕따’를 당해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건장한 남자를 보면 무서워 가까이 가지 못하고 집 가까이 놀이터에 산책을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얼른 집으로 달려온다. 물론 직장을 다닐 엄두도 못내고 외출할 때는 아버지가 따라 다녀야 안심을 한다.
이렇듯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과거에 받은 심한 충격들이 망령처럼 자나깨나 따라다녀, 환경이 바뀌고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는데도 사고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거나 성폭행을 당하였던 그때의 고통스런 상황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 사람의 기억에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과거의 일들이 정서적인 외상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먼저 위협적인 외상 직후 이런 위기에 개입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데 효과적이고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런 환자를 대하며 충격적인 사고 당시에 겪었던 일들을 잘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때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공감해주면서 그 경험이 자신만의 특별한 반응이 아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두려워하고 피하는 일들에 대해 서서히 부딪쳐 보도록 권하며, 불안으로 인한 긴장과 신체증상이 상당히 있으면 호흡훈련과 같은 이완요법도 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 장애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사용하여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불명예스럽게도 안전불량국가라는 오명이 붙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재난들이 결국에는 인재(人災)로 밝혀진다. 국민들의 안전에 최대한 역점을 두어 안전관리체계를 확고히 하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배려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도록 국가와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할 시기라 생각된다.
또 우리는 나에게 닥칠 어떤 스트레스 사건에 대해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것을 감당할 역량을 평소 길러야겠다.
· 정신과 김정범 교수 · 상담전화 : (053)250-7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