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2009.09.25 3934 관리자
40대의 중년 여성이 전신에 힘이 빠지고 항상 피곤하고 무기력해서 내과 진료를 받아 보니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라고 해서 방문하였다. 이 여성은 지난 9월말부터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 울고 싶고 팔다리에 힘이 없고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자주 허전한 느낌이 들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초콜릿이나 단팥빵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는 몸이 귀찮아서 잠을 자는 행동이 반복되면서 최근에 체중이 3kg이나 늘어났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며 낮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지고 때로는 이러한 자신의 행동이 비참하게 느껴져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면담을 하면서 이전의 생활을 물어보니, 처녀 때부터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철만 되면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지고 혼자 있고 싶어지며 무겁고 슬픈 음악 듣기를 좋아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을을 타는 여자’라는 말을 들어왔다고 한다. 대개 겨울을 지나 봄철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활달한 성격이 되살아났으며 지금까지는 일상생활에 별 어려움 없이 지내 왔기에 단지 가을을 많이 타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지냈다고 한다.
위 여성처럼 매년 주기적으로 가을이 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의욕이 없어지며 식욕의 변화가 생기는 장애를 ‘계절성 우울증’이라 한다. 사람의 기분은 계절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계절에 따라 기분 상태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를 의학적 용어로는 ‘계절성 정동장애’(정동=기분)라고 한다. 흔히들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실제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봄과 가을같이 기온과 일조량의 변화가 심한 시기에 정신과적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를 흔히 접하게 된다. 대개는 우울증이나 조증과 같은 기분 증상들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일부는 정신병 증상들도 영향을 받는다.
지금까지 연구에 의하면 계절성 정동장애는 전체 성인의 약 4∼12%에서 나타난다고 보고되었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들의 약 70∼80%는 여자이며, 가장 흔히 발병하는 연령층은 30대이다. 일반적으로 적도에서부터 멀어지는 지역, 즉 위도가 높을수록 발병률이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계절성 정동장애란 몇 번의 계절에 걸쳐서 규칙적으로 기분의 변화가 되풀이되는 경우를 말한다. 가장 흔한 형은 겨울형 계절성 정동장애이다. 이는 가을철이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겨울이 지날 때까지 우울하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우울이 없어진다. 반대로 드물지만 여름형 계절성 정동장애도 있다. 여름에 주로 우울해졌다가 가을과 겨울이 되면 오히려 우울이 없어지는 경우이다.
계절적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우울 증상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울한 시기에는 식욕이 오히려 증가하고 잠이 많아지며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생겨 체중도 늘어난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며 사람들이 만나기 싫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개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들이다.
우울한 기분과는 반대로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는 경우를 조증이라고 한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발생하는 것은 ‘조울병(양극성 장애)’이다. 조증은 대개 봄에 잘 발병 혹은 악화하는 경향이 있고 가을이 되면 우울증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조울병과 계절성 정동장애와는 다소 관련이 있다. 일부 연구가들은 계절성 정동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90%는 양극성 장애 1형/2형으로 분류되어질 수 있다고 하였고, 양극성 장애 환자들의 15%에서 조증의 재발이 계절성을 보인다고 하였다. 이러한 계절성 경향은 기온, 일조시간, 습도, 낮의 길이 등과 같은 여러 기후인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필자가 1995년도에 시행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조울병 환자들에서도 조증의 발병이 3~4월(봄)에 절정을 이루었고 그 외의 시기에서는 비슷한 발병률의 분포를 보였다. 조증의 발병과 관련된 기후인자를 분석해 본 결과 햇빛의 뜨거움보다는 햇빛의 밝기가 조증의 발병과 관련이 있었다.
계절성 우울증의 치료는 다른 우울증의 치료와 유사한데, 다만 광치료가 계절성 우울증의 첫 번째 치료방법으로 추천될 만큼 우수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광치료를 시작할 때는 대개 오전에 2500lux의 빛을 쬐게 하는데, 환자가 이에 반응이 없거나 다른 치료를 원할 때에는 항우울제 투여가 고려되어야 한다. 일부의 경우에는 항우울제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도 한다. 다만 항우울제를 사용하기 전에는 계절성 우울증이 조울병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지에 대해 전문가의 평가가 필요하다. 가을철에 찾아드는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기분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을이 시작될 즈음에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느껴지면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고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활동 계획을 구상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가능한 많은 햇빛을 쬐는 것이 도움이 되므로 평소 야외 활동과 운동으로 신체적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 김 희 철 교수 / 정신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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