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2009.10.08 4595 관리자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성화를 점화하였다. 성화를 들고 있는 오른쪽 팔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었으나 왼쪽 손과 팔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신경과의사라면 누구나 알리의 왼손에서 관찰되는 떨림이 파킨슨병 증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후 한동안 파킨슨병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관심거리였다.
파킨슨병은 퇴행성 뇌질환이다. 퇴행성 뇌질환은 뇌세포의 퇴화로 인해 뇌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질환이다. 파킨슨병 증상은 뇌중에서도 가운데 뇌의 흑질 부위에 퇴행성 변화가 와서 이 세포로부터 분비되는 도파민이 부족하여 나타난다. 도파민은 운동기능을 조절하는 중요한 물질이므로 이 물질이 부족하면 신체에 여러 가지 운동기능 장애가 나타난다. 권투선수 알리의 손에서 관찰되던 것과 같은 떨림이 파킨슨병의 대표적 증상이다. 떨림과 더불어 움직임이 느리고 자세가 불안정한 증상이 있으면 파킨슨병일 가능성이 있다.
파킨슨병에서 나타나는 손 떨림은 가만히 쉬고 있을 때 나타나고 수저질을 한다거나 손으로 뭔가 일을 하면서 움직이면 사라지는 특징이 있으므로 다른 종류의 떨림과 구별된다. 걸으려고 할 때 첫걸음이 어려워서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이며, 걷다 보면 자세가 불안정하여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종종걸음을 하고 넘어지기 쉬운 형태의 보행 장애가 있다. 서있거나 걸을 때 자세가 앞으로 구부정한 느낌이 든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얼굴 표정이 굳은 듯이 보여서 다른 사람에게 인상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팔이나 다리에 뻣뻣한 느낌이 있으며, 관절을 구부렸다 폈다 해보면 마치 톱니바퀴가 도는 듯한 느낌의 관절 경직이 느껴진다. 이처럼 여러 가지 특징적인 증상이 있으므로 파킨슨병의 진단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다른 퇴행성 뇌질환과 마찬가지로 파킨슨병도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시작되므로 초기에는 진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한쪽 손의 가벼운 떨림이나 매우 미미한 보행 장애 또는 운동이상으로 시작되므로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흔하다. 단순한 수전증 또는 관절염으로 진단하고 치료받기도 하고, 혈액 순환장애나 뇌중풍으로 생각하고 적절하지 않은 약을 오랫동안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중풍으로 인해 떨림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파킨슨병은 약물로 치료하며, 여러 가지 치료약이 개발되어 있다. 초기에는 한두 가지 약을 복용함으로써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증상이 좋아진다. 증상의 변화에 따라 약의 종류를 늘리고 복용량을 증가시키면서 치료하면 장기간 매우 좋은 상태로 지내게 된다.
파킨슨병 치료제는 뇌세포의 퇴화로 인해 부족해진 도파민을 보충해주거나, 도파민 부족으로 인해 유발된 뇌세포 기능의 불균형을 교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많은 양의 도파민제를 투여하면 증상이 더 많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나 파킨슨병의 치료는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하므로 약제의 선택과 투여량을 잘 조절해야 한다. 어느 약제나 부작용이 있고, 또 장기간 사용하면 효과가 감소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의 적절한 처방에 따라서 치료받아야 한다.
장기간 약물치료를 받다보면 병 자체는 점차 진행하고, 약물의 효과도 감소하여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수술 치료를 고려하기도 한다. 수술 치료는 병이 많이 진행하여 더 이상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 한하여 시행한다. 수술 치료는 뇌의 구조물 중 신체의 운동조절과 관계있는 특정부위의 세포를 파괴하거나 전극을 넣어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퇴화된 뇌세포를 대신하여 도파민을 분비할 수 있는 조직이나 세포를 이식하는 치료법을 시도하기도 하는 데 아직도 효과적인 방법이 개발되지 못한 상태이다.
파킨슨병은 혈액검사나 방사선학적 검사로 진단할 수 없고 의사의 진찰을 통해서 진단되므로 발생 초기에는 다른 병으로 진단되기 쉽다. 손 떨림 같은 파킨슨병의 특징적인 증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혈액순환장애나 뇌중풍으로 잘못 알고 치료받는 경우가 흔하므로 의심스런 증상이 있으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파킨슨병은 서서히 시작되어 천천히 진행하므로 수명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임정근 교수 / 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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