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
2010.06.04 6860 관리자
열흘 전 수술을 하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서 “집에 가야된다”면서 소란을 피우신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옆에 있는 아들에게 “당신은 누구요?”라며 묻는 등 황당한 행동을 보이신다. 어머니에게 갑작스러운 치매가 온 것일까?
이 환자의 경우 갑작스럽게 가족도 몰라보고,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는 등 자신이 가진 기억의 일부가 지우개로 지워진 듯 보인다. 많은 가족들이 치매가 온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 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섬망’이라는 일종의 정신장애이다.
섬망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의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Hippocrates(460~370 BC)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여러 가지 정신병에 대한 기술을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급성뇌증후군, 즉 섬망에 관한 것이다. 섬망(Delirium)이란 단어는 J. E. D. Esquirol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국내의 경우 1613년 발간된 동의보감에도 열성섬망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섬망이란 질환은 결코 생소하지 않으며 매우 흔한 질환이다. 모든 입원환자의 10%가 다소의 섬망을 경험하며 수술을 받은 환자나 관상동맥 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30~50% 정도가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치매와는 달리 어떤 연령층에도 발생할 수 있지만 특히 소아와 60세 이후에 더 흔하게 나타난다.
섬망은 이처럼 흔하게 나타나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진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 우울증, 정신병 등으로 오인되기도 하며 때로는 환자가 치료에 비협조적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럼 섬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자로는 ‘헛소리 섬’, ‘망령될 망’을 써 말 그대로 헛소리를 하고 망령이 들었다는 뜻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의식이 흐려지고, 착각을 일으켜 헛소리ㆍ잠꼬대와 함께 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섬망은 치매와 달리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며 지속시간이 비교적 짧고, 의식이 흐려졌다가 맑아졌다가 하는 것이 반복된다. 섬망은 뇌의 기능적인 변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의식의 혼탁, 사고장애, 행동장애, 감각장애를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섬망을 진단할 때는 생김새, 의식의 정도, 사고, 언어, 지남력, 기억력, 기분, 판단력, 그리고 행동을 조사해야 한다.
섬망은 대사성 질환, 감염성 질환, 심혈관계 및 호흡계 질환 등 뇌에 영향을 미치는 전신질환, 약물 및 독소 등 외인성 물질에 의한 중독과 알코올 등 의존 물질로부터의 금단 등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 약물의 경우 벤조다이아제핀의 복용이나 항콜린성 효과가 강한 약물들이 섬망을 일으킬 수 있다.
섬망은 뇌의 직접적인 손상이나 기존의 정신병이 악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갑작스러운 신체상태의 악화에 따른 광범위한 뇌기능의 저하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또 환경적으로 낯선 경우 더 잘 생기며, 보호자가 배제되는 중환자실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감각기관에 장해가 있는 경우도 더 잘 발생한다. 적절한 자극이 섬망 증상을 호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데 예를 들면, 완전히 어두운 방보다는 은은한 조명을 켜놓고 적당한 정도의 소음이 있는 것이 좋다.
섬망의 치료는 우선적으로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원인이 되는 질환을 인식하여 이에 대한 치료를 해야 하며 원인이 되는 약물은 감량하거나 중단해야 한다. 또 생활의 리듬을 회복해 주고 적당한 자극,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증상이 심한 경우 항정신병 약물을 소량으로 사용하여 증상을 조절할 수도 있다. 알코올성 섬망의 경우 항정신병 약물의 사용은 경련을 유발할 수 있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고 벤조다이아제핀계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학적 상태로 나타나는 섬망의 경우 벤조다이아제핀의 사용이 오히려 섬망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섬망은 많은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신체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불청객이다.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입원기간이 길어지고 사망률도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섬망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생기는 병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병이 바로 섬망이다.
● 정성원 교수 / 정신과
● 상담 및 문의 : (053)250-7814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41931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로 56
대표전화 : 053-250-8114팩스 : 053-250-8025
COPYRIGHT (C) KEIMYUNG UNIVERSITY DAEGU DONGSAN HOSPITAL. ALL RIGHTS RESERVED.